2012-03-26

경주답사 - ①


경주 답사 

2012/03/24-25



1. 손순유허지(孫順 遺墟址)


아침 7시 15분 경 서울을 출발하여 11시 30분에 손순유허지(孫順 遺墟址)에 도착하였다.

손순유허지는 월성에서 7.5km 떨어져 있다. 

삼국유사에 손순이 모량리(牟梁里)사람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에

신라 6부 중 하나인 모량부의 위치를 찾는데에도 중요한 유적이다. 



마침 음력 3월 3일이라 사당제가 올려지는 날이어서 경주 손씨들이 모여 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10월 3일에도 제사가 올려진다고 한다.  

덕분에 사당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사당의 이름은 문효사(文孝祠)라고 한다.

손순은 신라 흥덕왕대(826-836)의 사람으로 집이 가난하자 

어머니의 음식을 먹는 아이를 땅에 묻으려 하다가

돌로 된 종을 발견하고 아이 묻기를 포기하였다. 

그 돌종의 소리를 들은 왕이 그 내막을 전해듣고 감동하여 상을 내렸다. 

이에 손순이 옛 집을 바쳐 절로 만들어 홍효사(弘孝寺)라 하고 돌종을 안치했다고 한다. 

이 내용은 삼국유사 효선9 "손순매아 흥덕왕대(孫順埋兒 興德王代)"에 자세하다.




문효사 건물 옆에는 돌종 모양으로 된 기념비가 있다.




문효사 옆에 따로 유허지비각이 건립되어 있고 안에 비석이 있는데 

이것은 1970년대에 세운 것이다. 

그 이전 19세기 후반 성재 허전이 유허비를 세운바 있으나 파괴되어 없다고 한다. 

손순은 현재 경주 손씨들의 시조로서 존숭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부계의 성을 중시하는 유교적 관념은 고려 이후에 생겨난 것이고, 

더욱이 신라시대에는 성씨관념이 거의 희박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과연 손순의 성이 손씨였는가 하는데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마동, 융천사, 충담사 등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실제 이름이라기보다 

그들의 행적과 관련된 것이 많으므로 손순이 실제 이름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으며 

특히 손순의 아버지 이름이 학산(鶴山)인 것을 보면, 

손순이 손씨라는 설은  설득력이 없다. 



2. 남사리 북삼층 석탑(南莎里 北三層 石塔)

손순유허지에서 10분 정도 소요되었다.

남사리석탑은 현재 남사 1리 복지회관 바로 앞에 있다. 

건너편에는 남사 저수지가 위치한다. 




이 석탑이 위치한 남사리는 손순의 원래 거주지이자 돌종을 발견한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즉 첫번째 답사지였던 경주시 현곡면 소현리의 손순 유허비는 손순이 왕에게서 집을 하사 받은 바로 그곳이며, 그 이전에 손순은 이곳 남사리에 살았다는 것이다. 


이 석탑은 남산 사자사터에서 옮겨왔다고 하므로 
손순과 관계가 있다고는 볼 수 없으나
남사리에 위치한 석탑이라는 이유로 방문하게 되었다. 


1995년에 해체되어 있던 석탑 부재들을 조립하였다고 한다.




3. 용담정(龍潭亭)

남사리 북삼층석탑에서 5분 소요되었다.

동학의 교주였던 최제우(1824-1864)가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하며 

현재는 천도교의 성지가 된 곳이다. 





4. 동국대(경주 캠퍼스) 박물관(12:50~13:15)

신라시대 예술가였던 양지스님과 관련된 석장사지 출토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5. 점심 (13:25-14:00)

동국대 근처 비빔밥(죽림식당) : 허름하나 내부 넓고, 음식 가격이 매우 싸고 맛있음 


6. 선도산

14:20에 무열왕릉 주차장에 버스를 대고 

서악리 삼층석탑 올라가는 길을 따라 선도산을 올랐다.



15:20에 서악동 마애여래삼존입상에 도착

바라볼 때 가운데 아미타불 왼쪽에 있는 것이 관세음보살이며

오른쪽에 있는 것이 대세지보살이다.

이들 협시 보살은 마치 다른 돌로 만든 후에 아미타불 옆에 세운 것처럼 보인다.

암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입상 옆에 사당이 있고 그 뒤로 들어가면

성모구기(聖母舊基)라는 음각이 있어 

삼국유사에 나오는 선도산 성모와 관련있는 유적이라 여겨지고 있다.

입상은 월성을 바라보는 듯하다


16:35에 서악리 삼층석탑 있는 곳에 도착, 

바로 옆에 진흥왕릉, 진지왕릉, 헌안왕릉, 문성왕릉이 있다. 

그러나 이들 능은 조선 후기에 가서야 비정된 것으로서 

해당 왕의 능이라는 근거는 사실상 취약하다. 



서악리 3층 석탑은 모전 석탑 계열에 속하며

기단부의 특이한 형식이 돋보인다. 


16:50 서악동 고분군 


서악동 고분군에는 태종무열왕릉이 있고 

그것을 증명하는 귀부가 있다. 


그러나 비석 몸돌이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각 수법이 매우 세련되고 웅장하다. 

길 하나를 건너면 김양, 김인문의 묘가 있다. 

 


김인문(金仁問 629-694) 묘비 귀부도 남아있다. 

이것이 김인문의 귀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서악서원에서 발견된 김인문 묘비가 이 귀부와 딱 맞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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